1996년 새해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공중목욕탕에 다녀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해를 이틀 앞두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다섯 살이었던 나는 아버지를 또렷한 기억이 아닌
꿈속에서 스쳐가는 듯한 흐릿하고 파편적인 이미지로만 간직하고 있다.
이후 어른이 되어가는 삶의 과정 속에서, 나는 마치 아버지의 공백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았다.
다양한 감정들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묻혀 있었고
이러한 무감각은 살아가는 내내 설명하기 어려운 혼란으로 나타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비롯된 감정의 억눌림이라는 사실이 인식되었다.
이 시리즈는 공중목욕탕이라는 집단적인 풍경에서 출발한다.
이 공간 안에서 마주한 장면들은 그동안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드러낸다.
그렇게 드러난 감정들은 성장과 혼란의 시간을 지나며
결국 스스로 감당하게 된 결핍이라는 보다 보편적인 감정으로 이어진다.
이 작업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라기보다
비어 있던 자리를 받아들이며 현재의 자신을 마주하는 기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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